•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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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의 길
            감사의 길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비겁의 때가 끼고,   나눠야 할 때 나누지 않으면 탐욕의 때가 끼고, 놓아야 할 때 놓지 않으면 고통의 때가 끼고,   기뻐할 때 기뻐하지 않으면 슬픔의 때가 끼고, 즐거워 할 때 즐거워 하지 않으면 근심의 때가 끼고,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인생에 '후회' 라는 때가 낍니다. 테레사 수녀가 빵집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빵 좀 기부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나 빵집 주인은 적선은 고사하고, '앗, 재수없어. 얼른 꺼져버려!' 라며, 테레사 수녀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또 한번 사정했습니다. "남는 빵이 있으면 좀 주시 면 안될까요?" 같이 갔던 봉사자가 울컥 하며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굴욕스럽지도 않으세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빵을 구하러 왔지, 자존심을 구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진정한 자존심이란 이런게 아닐까요? 살다 보면, 일하다 보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울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난 돈 벌러 왔지, 자존심을 벌러온 게 아니야!'라고 테레사 수녀의 말을 빌려 마음을 다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다보면 정말 감사할 일만 많이 생깁니다. 행복의 나라로 가는 외 길은 딱 하나,"감사의 길" 입니다. https://youtu.be/p1DxJLvu4IA?si=0F57Gt671gEWZs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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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위대한 우정
      위대한 우정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지역의 주민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낸다. 바르셀로나는 1492년에 마드리드의 이사벨라 여왕 주도로 스페인(에스파냐)으로 통일된 후, 마드리드 중앙 정권으로부터 압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지금도 자기들만의 언어를 고수하고, 아직도 분리독립을 주장해오고 있다. 그런데 동시대에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테너가수 두 명이 이 두 지역에서 각각 한 명씩 나온다. 마드리드 출신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바르셀로나 출신의 호세 카레라스 두 사람은 라이벌인데다가 배타적인 지역 정서 때문에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상대방이 나오는 무대에는 절대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1987년, 카레라스의 인기가 절정에 이를 무렵, 그는 도밍고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힘든 강적을 만났다. 카레라스는 불행히도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생존확률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백혈병과의 투쟁은 심신을 고갈시켰고, 더 이상의 활동이 불가능했다. 그동안 카레라스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지만, 한 달에 한번씩 해야하는 치료를 위해서 스페인에서 미국의 시애틀을 왔다 갔다 하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카레라스의 경영형편은 극도로 열악해졌다. 골수이식이며 치료에 많은 재산을 다 쏟아 부었건만, 쉽게 병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그즈음, 카레라스는 마드리드에 "헤르모사재단"이라는 자선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재단은 백혈병 환자를 돕는 단체였다. 그는 신청서를 보냈고, "헤르모사 재단"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다. 카레라스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테너 가수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카레라스는 다시 세계적인 테너 가수에 걸맞는 많은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는 "헤르모사 재단"에 기부금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재단의 정관을 읽어 보던 카레라스는, 놀랍게도 재단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이 다름아닌 도밍고라는 것을 발견했다. 도밍고가 병든 카레라스를 돕기 위해, 그 재단을 설립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경쟁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줄곧 익명을 고수했던 것이다.  크게 감동을 받은 카레라스는 어느 날, 마드리드에서 열린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아 그를 놀라게 했다. 카레라스는 공연 도중 무대로 올라가서 도밍고의 발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공개적으로 감사의 말을 건넨 뒤에, 용서를 구했다. 도밍고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힘껏  끌어 안았다.위대한 우정이 싹트는 순간이였다. 도밍고처럼, 음악가의 세계에서 라이벌을 이렇게 따뜻이 배려하고 자신의 물질까지도 내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릎 꿇은 카레라스보다 더 커 보이는 이유입니다. 가족간, 형제간 그리고 이웃간의 배려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라서 함께 공유해 보고자 올려봅니다. 세계 3대 테너의 공연영상 입니다???? 도밍고, 카레라스, 파바로티 https://m.youtube.com/watch?v=l7eHO_PEW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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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실화(實話)하나 소개
      실화(實話)하나 소개 일제 강점기(日帝 强占期) 시절에 충남 예산에 꽃같이 어여쁜 처녀 한분이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가 17살에 시집간지 2년만에 서방님이 졸지에 죽어 19살에 과부가 됐습니다. 동네에선 그녀를 볼 때 마다 불쌍하다!! 나이가 아깝다!! 하면서 위로해 줬지만 19살 과부(寡婦)에게는 혹독한 시련이었고 고난이였기에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어느날 그녀는 마음을 다잡아 먹고 거울앞에 앉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잘라버렸답니다. 그러면서 젊은 과부가 마을 어르신네들로 부터 듣는 동정의 말들이 듣기가 너무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갈 방법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방도 죽고 자식도 없는 시댁(媤宅)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지만 친정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무언가 새로운 갈을 모색(摸索)하기로 결심하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낯 설고 물설은 서울 생활이 어린 과부에게 녹녹지 않았습니다. 소개해 준 곳곳마다 가서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 했답니다. 식당에서 설거지와 남의집 빨래도 하며 차츰 서울 물정에 눈을 떴을 때 지인의 소개로 어느 부유한 집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그집에서 밤낮으로 열정(熱情)을 쏟아부으며 성실(誠實)하게 일 했습니다. 주인댁 부부 모두가 마음씨가 좋았고 주인 어르신께로 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주인께서 말씀이 <''나이도 젊은데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 보라''>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두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중 하나는 ''야간 학교에라도 가서 늦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고, 또 하나는 ''주인을 따라 주일에 교회를 갈 수있게 해 달라'' 했습니다. 인정 많으신 주인 어르신께서 정말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젊은 과부의 소박한 소원을 흔쾌히 들어 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했고 또 주일에는 빠지지 않고 교회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인 어르신의 큰 은혜에 감읍(感泣)하여 갑절로 더 열심히 성실히 일을 했고 밤에는 학교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최우수 학생으로 장학생이 되었고 학교로 부터 실력과 성품(性品)을 인정받았고 22살 되던 해(1913년) 늦게나마 숙명고등 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일제 강점기 때인데 26살 때인 1917년 모교에서 그녀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주었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게된  26살 젊은 과부는 너무나도 감사가 차고 넘쳤다고 술회했습니다. 일본 도쿄여자 사범대학예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연락선을 타고 부산 포구(浦口)에 내린 젊은 과부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신문에서도 예산의 시골 젊은 과부가 당대의 명우 윤심덕 처럼 멋쟁이가 되어 귀국했다 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1921년)했을 때 그녀의 나이 30세였습니다. 모교인 숙명여고 교사 근무를 거쳐 당시의 조선총독부 장학사로 임명 받고 일하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숙명여자전문대학으로 승격 되어 학장으로 취임 한 후, 10년 후인 1955년에 숙명여자대학교을 세우고 초대총장으로 취임하신 분이 바로 17세에 시집가서 19세에 남편이 죽고 식모살이 까지 했던 예산의 19살 과부 임숙재(任淑宰)총장 이야기입니다. 임숙재는 숙명여대를 창설, 성장발전 시켰을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운명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임총장은 항상 제자들에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시오''>라고 교훈과도 같이 늘 일관되게 가르쳐 왔습니다. 19세 시골출신 과부가 식모살이에서 대학총장까지 승승장구한 사연이야 말로 인간이란 존재는 <''고난을 잘 이겨내야  무슨 일이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산 증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져 있음을 보여 준 살아있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이나 위치에 처해 있던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이겨내고 잘 다스려 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 돤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도 숨겨진 잠재력이 있는데도 스스로를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찾아 내는 것 또한 내 몫이 아니겠습니까. 내 자식들과 후손들 몫 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임숙재총장의 삶이 너무도 드라마틱(Dramatic)하여 다시 읽어도 감명되어 소개하게 된점 해량(海諒)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둘러싼 환경이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을지라도 임숙재총장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所望)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임숙재 총장께서 만약에 19살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시골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깐 우리에게 닥친 위기(危機)란 것은 도리어 복(福)의 통로(通路)가 되어 인생역전(人生逆轉)의 고귀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훌륭한 교훈으로 남겨 주셨고 임숙재총장께서는 1961년 향년(享年) 71세로 작고 하셨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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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겉 모양의 판단
      겉 모양의 판단   한 중년 여인이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어느 대기업 건물 앞에 있는 정원의 벤취에 앉아 성난 표정으로 아이를 훈계하는 중이었다. 마침 근처에서는 노인분이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핸드백에서 화장지를 꺼내더니 노인이 일하는 쪽으로 휙 던졌다. 노인은 황당한 표정으로 여인이 있는 쪽을 돌아 보았지만 여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심드렁하게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아무 말없이 화장지를 주워 쓰레기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잠시 후, 여인은 아이 코를 훔친 화장지를 또 던졌고, 노인은 역시 묵묵히 화장지를 주워 쓰레기 통에 버렸다. 노인이 막 관목 손질용 가위를 집어 드는 순간, 세 번째 화장지가 그의 눈 앞에 툭 떨어졌다. 여인의 무례한 행동이 반복 되는 동안 노인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여인이 아이에게 나무를 손질하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 잘 봤지? 어릴 적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 할아버지처럼 미래가 암울해. 평생 저렇게 고단하게 비천한 일을 하며 살게 되..."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손에 잡은 가위를 내려놓고 그들이 있는쪽으로 다가왔다. "부인, 이곳은 회사 소유의 정원이라 직원들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전 이 회사 소속 계열사의 부장이에요. 산하 부서에서 일한다구요...." 그녀는 목에 잔뜩 힘을 준 채 거만하게 신분증을 흔들어 보였다. ????"휴대전화 좀 빌려 주시겠소? 노인이 그 여자에게 부탁하자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휴대전화를 건네 주었다. 그 여자는 이때다 싶어서 기회를 이용해 아들에게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저렇게 나이가 들었는데도 휴대전화 하나 없이 궁색하게 사는 꼴 좀 봐라. 저렇게 안 될려면 열심히 공부해야해. 알았지?..." ????휴대전화를 건네 받은 노인은 통화를 끝낸 후 '고맙다'며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돌려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남자가 급하게 달려와 노인 앞에 예의를 갖추었다. 노인은 그 남자에게 말했다. "저 여자를 당장 회사에서 해고시키게..." ????"알겠습니다. 지시하신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인은 아이 쪽으로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란다..." 이 짧은 한 마디만 남기고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여인은 눈앞에 벌어진 뜻밖의 상황에 너무도 놀랐다. 달려온 남자는 그룹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임원이자 그녀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저 정원사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거죠?" "무슨 소리야? 정원사라니? 저 분은 우리그룹의 회장님이셔..." ????"뭐라고요? 회장님?" 여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겉 모습만 보고 판단한 일 순간의 실수로 평생 직장을 날려버린 것이다. ????지위나 신분을 보고 사람을 존중해서는 안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삶의 필수조건인 것 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존중의 정도를 조절하는 비인간적인 기회주의 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곧 나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명언 오만한자는 진실을 보지못한다.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 행복하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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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신념(信念)의 힘
      신념(信念)의 힘 2차대전 참전 해군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던 해군 장교가 암에 걸려 군대를 의가사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 번이나 암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는 최후 통첩을 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3개월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90일이라는 값진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는 미해군사관학교 졸업생으로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얼마 남지않은 마자막 생애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게 해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암때문에 의가사 전역을 당한 그를 군에서는 받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국회의원들을 찾아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부결되었고, 결국 청원서류는 대통령에게까지 가게 되었으며 33대 대통령 트르먼은 그가 다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는 군대에 복귀하자 예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했고, 몸을 아껴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사병의 일까지 자진해서 맡아 해냈습니다. 그렇게 90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숨이 붙어 있는 한 내가 맡은 일을 완수한다.’ 고 다짐하며 동료나 부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임무에만 매진했습니다. 3년이 지나도 그는 무사 했습니다. 오히려 암의 증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의사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장교는 1968년 월남전에 상륙전단을 지휘하고 무적함대로 세계에 용맹을 떨친 미해군 제7함대 사령관 로젠버그 입니다. 만일 '로젠버그'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좌절했더라면,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까요? 죽음마저도 물리친 '로젠버그' 의 비결은 특효약이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신념의 힘">이 그런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처럼 한 인간의 신념은 죽음보다도 강하며,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신념은 죽음도 연장시키는 기적을 낳습니다. 희망을 생각하면 희망적인 결과가... 희망의 끈을 놓으면 그 순간 절망의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도 긍정적이고, 밝고, 능동적인 생각을 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혹,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다면 모두들 힘내시고 이 시기 또한 지나가고 좋은 날이 올 거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힘차게 매진하시길... 얼굴을 펴면 인상이 좋아지고, 허리를 펴면 일상이 좋아지고, 마음을 펴면 인생이 좋아집니다. 신념의 힘을 다른 말로 "자기 암시의 기적" 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이 어떤 일을 달성하고, 흔들림 없게 하는 토대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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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가시나무
         가시나무  ⭕ 어느 깊은 산속의 산사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그럼, 가시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꽃나무, 아카시아 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몸통 둘레가 한아름되는 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는 한아름 되게 크지는 않는다. 가시가 없어야 한아름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시가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가 되어 집도 짓고 대들보로 사용할수 있는 것이다.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용도가 많은 훌륭한 지도자이며, 꼭 필요한 사람이며, 정말로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가시가 없어야 우주를 살려내고 인류를 살려내는 성현이 되느니라. 그래서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가끔은, 내가 인간 관계에서 가시를 만든 적 없는지? 생각해 보면서 지금도 말이나 글의 가시로 남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는지 더듬어 봅니다. 항상 가시를 조심하면서 가시 없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요. 늘 감사합니다. 乙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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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 선(善)과 악(惡)
          선(善)과 악(惡) 어느 대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칠판에 '善과 惡(Good and Bad)' 이라고 써 놓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하던 중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다가 큰 폭풍우로 해난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그 배에 비치돼 있는 '구조정'에는 남은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이때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정'에 올랐고, 부인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교수는 여기까지 얘기 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부인이 남편을 향해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요?" 얘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흥분과 격분으로 여기저기서 떠들며 대답을 했다.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 눈이 삐었지! 어디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두고 봐라." 등 남편을 마구 욕하는 여러 가지 대답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이 때 교수의 눈에 한 학생이 한 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학생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튀어 나왔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우리 아이들 잘 키워 달라'며 울부짖었을 것 같아요." 교수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이 얘기를 어디서 들어 봤니?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어릴 때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뿐이에요." 교수님은 그 학생의 말에 감동을 하며 다시 교단에 서서 말했다. "정답(正答)이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 둘을 잘 키웠고, 그 남편도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그 자녀들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폐암 말기로 아빠와 함께 세상을 떠날 마지막 위로 여행 중이었다. 그 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했고, 아빠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 때 당신이 나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지를 않았더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소. 우리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게 할 수 밖에 없었소. 천국(天國)에서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고대하며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교수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도 흥분하며 떠들던 학생들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교실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겁고 숙연한 교실 분위기 속에 학생들도 이미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을 교수도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 숨어있는 깊은 뜻은, 전후사정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섣부르게 善과 惡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자료제공: 유병소 교수 -
    • 이청일메일
    2024-03-20
  • 함께 가야 할 同伴者
    함께 가야 할 同伴者   골프에서 함께 공을 치는 네(4) 사람을 한 팀이나 한 조라고 하지 않고 同伴者라고 부른다. 아마 5시간 이상을 함께 한 방향으로 가야 하고, 공감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좋은 골프장보다 좋은 同伴者와 함께 할 때, 훨씬 편하고 즐겁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 골프는 예절과 공정이 몸에 베인 同伴者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퀴즈를 냈다.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두둑한 상금 욕심에 많은 사람이 응모에 나섰다. 물리학자, 수학자, 설계사, 회사원, 학생들이 저마다 기발한 해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수많은 競爭者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한 답안은 이러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사람의 인생길은 멀고 험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날씨가 좋을 적 맑은 날 주막에 이르는 손님보다는, 폭풍우 속에서 비바람을 헤치고 온 사람을 더 따뜻하게 환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는 이렇게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날이 많다. 그 길을 무사히 행복하게 가자면 가족, 친구, 동료 이런 여행의 '同伴者'가 있어야 한다. '라피크(Rafik)'란 '먼 길을 함께 가야 할 同伴者'라는 뜻의 아랍어 'RAFIK'이다. 좋은 同伴者란 '상호 간에 공감이 가는 사람, 함께 느낄 수 있고,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일 것이다. 좋은 동반자가 취할 행동은 아마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함께 행동하는 그런 경우일 것이다. 이것이 좋은 同伴者의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좋은 同伴者의 필수조건은 共感이다. 樂聖 베토벤의 成功엔 이런 共感의 同伴者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였다. 천둥 치는 어느 날, 소년 베토벤이 마당에서 혼자 비를 맞고 있었다. 소년은 나뭇잎에 스치는 비와 바람의 교향곡에 흠뻑 빠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집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아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꼭 껴안아 주었다 함께 비를 맞으며 “그래,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함께 들어보자.” 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들은 신이 났다. “엄마,새소리가 들려요. 저 새는 어떤 새죠? 왜 울고 있어요?” 어머니는 暴雨처럼 쏟아지는 아들의 質問에 多情하게 응대했다. 위대한 베토벤의 交響曲은 아마 그때 밀알처럼 싹이 돋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同伴者를 원한다. 人生길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바로 나 스스로 가 먼저 ‘좋은 同伴者’가 되어 주는 것이다. 홀로 비를 맞는 상대에게 다가가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다. 라피끄(Rafik)! 그런 靈魂의 同伴者가 부쩍 그리운 世上이다.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 좋은 친구들과 아름답게 同行하는 幸福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이청일메일
    2024-03-19
  • 크랩 멘탈리티
      크랩 멘탈리티 (crab mentality)   양동이에 '게' 한 마리만 담아 두면 알아서 기어 올라와 빠져나갈 수도 있지만, 여러 마리의 '게'가 함께 있으면 한 마리가 나가려고 할 때 다른 녀석들이 그 '게'를 잡고 끌어내려서 결국 모두가 못 나가게 된다고 하는데, 이를 ‘크랩 멘탈리티 (crab mentality)’라고 합니다. 남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끌어내리려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옛 속담 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런데 이 크랩 멘탈리티 와는 아주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2017년 12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BMW 댈러스 마라톤 대회에서의 일입니다. 여성부 1위로 달리고 있던 뉴욕 정신과 의사인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을 고작 183m를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완전히 풀린 '첸들러 셀프'는 더는 뛰지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에게는 다시없는 우승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2위 주자인 17세의 고교생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 셀프'를 부축하고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첸들러 셀프'에게 그녀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어요"라고 끊임없이 응원하며 함께 달렸습니다. 그리고 결승선 앞에서 그녀의 등을 밀어주어 우승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미국 시민들은 1등이 아니라 2위로 들어온 17세의 '아리아나 루터먼'에게 더 큰 환호와 찬사를 보냈습니다. ???? ♀️마라톤 결승선 앞 동영상 https://youtu.be/sbXy2vkJxSk
    • 이청일메일
    2024-03-18
  •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릴적 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였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처음으로 희열이란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 철 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이곳 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에 팀에 들어 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 어릴적 부터 정상인 보다 두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 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이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 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가난하였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 할 수 없었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나의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일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였다 재활을 마친 후 나는 더욱 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 하면 어떤가.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 많은 관중, 서포터즈, 스포츠 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랬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자신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한다. 그는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였다.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평가 받는 퍼거슨 감독이였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며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있으셨다. 구멍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였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되었다. 호날두가 누군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호날두는 현 메시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로 한 때는 캡틴 박. 박지성 선수와 한 팀에 속해 있었어요. 축구 선수 중 가장 높은 몸 값을 자랑하는 선수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호날두가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은 한국인 5천만이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을 넘는다는군요. 공익을 위한 광고는 조금의 돈도 받지 않고 촬영하며 소말리아에 300억의 기부와 자신의 팬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하고 현재는 아동질병 퇴치와 아동구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호날두는 운동선수에게 그 흔한 문신하나 없는데 그 것은 문신을 하면 당분간 헌혈을 할 수 없어서 문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요.
    • 이청일메일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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